다른전시 예매하러 들어갔다가 딜쿠샤도 같이 했다(...)
그래서 이번주 토요일에 다녀옴 !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11007171642799997
딜쿠샤(DILKUSHA)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으로 앨버트 W. 테일러와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의 이름입니다.
테일러 부부는 192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4년에 딜쿠샤를 완공하였습니다. 1926년에는 화재가 발생해 1930년에 재건되었습니다. 1942년 일제가 테일러 부부를 추방한 후 딜쿠샤는 동생 윌리엄 W. 테일러가 잠시 관리하였습니다.
이후 1959년에 자유당 조경규 의원이 딜쿠샤를 매입하였으나 1963년에 조경규 의원의 재산이 국가로 넘어가면서 딜쿠샤도 국가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딜쿠샤는 오랜 기간 방치되어 본모습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5년에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가 앨버트의 아들인 브루스 T. 테일러의 의뢰를 받아 딜쿠샤를 찾아내었습니다. 2006년 브루스는 마침내 66년 만에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살던 딜쿠샤를 방문하였고, 딜쿠샤는 그렇게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딜쿠샤가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이 된 경위이다.
중간에 오랜 기간 방치되어 본모습을 잃게 되었다는 문장이 있다. 그러나 딜쿠샤 에서는 그 중간 기간에도 누군가가 살았었다. 그래서 고증이라는 것이 과연 옛것 그대로 그냥 리모델링 해버리는게 맞는지 아니면 그 중간에 버려졌던 역사까지 포함했었어야 하는지에 대한..아쉬움을 담은 칼럼을 잃은 기억이 있다.
암튼 예약은 1시간 단위로 할 수 있고 나는 조금 늦어서^^! 40분 정도 관람하였는데 딱 좋았다.
서대문 역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단풍이 벌써 이렇게 들었구나,, 싶었다.
길가다 홍난파 가옥을 만남.
여기도 원래 관람이 가능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금지당.
빨간 담쟁이가 너무 예쁘다.
딜쿠샤
그 시대에 이 동네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동네가 독일인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였다고 한다. 지금은 다 그 집들이 없어졌지만..
어떤모습이었을지 궁금하다.
전시를 너무 오전에 예역했고 오후에 일정도 있어서 사실 갈까말까 고민을 좀 했었는데 인터넷에서 이 은행나무 사진을 보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푸르른 나무를 만났다^ㅅ^...!
1층의 응접실이다.
이렇게 천장이 높은 집에서..살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벽간소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있다.
벽간소음은 저 옆집인간의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건물 자체가 거지같기 때문이다.
부모님 집을 나오고 나서 처음으로 그냥 같이 살껄 그랬나? 이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랬다면 아파트에 살고 있을테고 뭣같은 티비소리같은 저 소리를 안들어도 되었을 테니 ㅠ
암튼 이런 집을 지어서 살았던 테일러 가족이 부러웠다^^...
이렇게 2층 올라가는 계단이 뉴질랜드에서 살았던 집을 연상케했다.
자수 병풍은 정말 아름다웠다.
2층의 거실
테일러 가족은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창문이 정말 많은것도 좋았다.
서울에서 원룸을 구하면서 미친 이딴걸 사람이 살라고 지은건가..이런 방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해가 안들어오는 방이나 밖으로 벽이 보이는 집은 진짜..병걸린다 병걸려
암튼 테일러 부부의 집은 층고가 높고 창문이 많아 해가 잘드는 집이었다^^
이런 고가구들도 넘 멋지다.
마리테일러의 그림도 볼 수 있다
연극배우였다고 하는데, 예능인들은 다른 재주들도 참 많은 것 같다.
둘은 일본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진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여 인도에서 10개월 후 다시 만났다고 한다.
좋겠다. 10개월 롱디는 해볼 만한 것 같다.
딜쿠샤를 나와서.
동네전경.
그냥 방문을 해봤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사실 생각보다 별로 볼 건 없었는데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날씨가 좋았고, 관람 인원에 제한이 있어 조용히 둘러보기 좋다.
상당히 재현을 잘 해놓은 것 같았다. 커튼봉이나 화장실 문손잡이 같은거 ㅋㅋㅋ 외국느낌 났던 기억..!